"韓·日 대립 장기화 땐 원상회복 어려워…양국 정상 일단 만나야"

입력 2019-08-01 17:25   수정 2019-08-02 01:39

인터뷰 - 하토야마 유키오 前 일본 총리


[ 김동욱 기자 ]
“한·일 간 대립이 장기화되면 경제계를 중심으로 구축된 상호협력 관계의 원상회복이 불가능해집니다. 일본 정부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는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중지돼야 합니다.”

지난달 31일 일본 도쿄 나가타초에 있는 동아시아공동체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난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현 동아시아공동체연구소 이사장)는 수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총리 재직 시절과 퇴임 이후 오랜 시간 공들였던 한·일 간 신뢰관계가 빠르게 ‘상실’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가슴 아프다”고 했다.

사무실 벽의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걸려 있는 한국 역대 대통령과의 만남 사진, 책상 위에 놓인 데라시마 젠이치 메이지대 명예교수가 최근 발간한 <손기정 평전> 등에서 한국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관심이 느껴졌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미국의 중재 △양국 정부와 기업이 참여한 징용피해자 배상기금 조성 △신속한 한·일 정상회담 개최 등 ‘종합처방’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일 관계가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입니다. 현 상황을 어떻게 봅니까.

“한·일 관계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을 우려합니다. 특히 문제가 생긴 대부분의 원인이 일본 측에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더 이상 악화될 수 없을 만큼의 상황까지 왔지만 이런 모습이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일본에 대부분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좀 더 설명한다면요.

“한·일 간에는 역사 인식, 역사적 사실을 파악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습니다. 대부분 일본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인들의 행적, 식민지 시절 한국의 실태를 충분히 알지 못합니다. 오히려 한국을 마치 위에서 내려다보는 입장을 취하는 경향도 있었습니다. 전쟁으로 상처받은 쪽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잘못된 우월의식에 기초해 일본 정부가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정부는 2일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할 방침이라고 합니다.

“결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정치·외교 문제 때문에 경제 공격을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외교 문제는 어디까지나 외교를 통해 해결해야 합니다.”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이 제외될 경우 양국 관계에 생긴 균열을 메꾸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빨리 대책이 나와야 합니다. 미국의 힘을 빌려서라도 최대한 한·일 간의 화해를 조기에 이루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베 총리가 한국에 대해 공격적으로 나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현재 일본 정부가 한국과 마찰을 빚는 것은 분명히 징용공 문제와 관련 있습니다. 아베 총리는 ‘한국을 혼내줘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일본 정부는 안전보장상 이유를 들어 한국에 대한 소재 수출을 규제했습니다. 이는 한국을 적국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한국 대법원의 징용 피해자 판결에 대해 일본 정부는 매우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징용공은 과거 강제적인 노동을 했던 분들입니다. 일본이 억지로 끌고 와서 강제적 노동을 시키면서 월급을 제대로 안 준 경우도 많습니다. 고통 속에서 돌아가신 분들도 있습니다. 징용공 문제가 과거 한일청구권협정 논의 과정에서 다뤄졌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일본 정부도 청구권협정으로 징용공 문제가 해결됐다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야나이 ?지 전 외무성 조약국장이 1991년 ‘국가 대 국가의 청구권은 소멸했을지 몰라도 개인 간 청구권은 종료되지 않았다’고 일본 내 위원회에서 확실하게 확인했습니다. 현 일본 정부도 이 사실을 기본으로 삼아야 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베 총리나 고노 다로 외무상은 ‘청구권협정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사실에 반하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사건 당사자인 일본 기업들과 한국 및 일본 정부가 중간에 들어가는 형태로 ‘위안부 합의’와 같은 기금을 조성해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합니다.”

▷아베 정권은 한국이 역사 문제와 관련해 요구를 바꾸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기본적으로 우치다 다쓰루 고베여대 명예교수가 주창한 ‘무한책임론’의 사고방식이 올바른 생각이라고 판단합니다. 전쟁으로 상처받은 사람, 식민지배로 고통받은 사람들이 ‘더 이상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때까지 계속해서 사죄의 마음을 지니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본에서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을 찬성하는 여론도 적지 않습니다.

“불행하게도 일본 사회는 헤이세이(平成)시대 30년간 경제적으로 좋지 않은 모습이 이어졌습니다. 반면 한국과 중국은 경제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이를 보고 일본 일부에서 발전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에 대한 일종의 질투 같은 마음들이 생겼습니다. 이런 질투심을 해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번 사태로 양국 경제가 모두 타격을 입을 것이란 우려가 큽니다.

“반도체 소재와 부품의 수출을 막게 되면 결과적으로 일본의 많은 기업들도 피해를 보게 됩니다. 1차적으로는 한국에 불이익이 있겠지만 최종적으로는 일본 기업이 불이익을 봅니다. 일본 정부의 조치는 어리석은 행위이며 잘못된 것입니다. 경제적 규제들은 최대한 이른 시일 내 그만둬야 합니다.”

▷악화된 한·일 관계가 조기에 풀리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습니다.

“사태가 장기화되면 장기화될수록 원래 상태로 회복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그동안 한·일 간에는 일종의 반도체 연합이 존재해 서로 협력해 왔습니다. 이런 연합의 고리를 끊어버리면 상호간에 ‘루즈-루즈 구도’가 형성됩니다. 하루빨리 ‘윈윈’ 관계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본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은 무엇일까요.

“일본이 한때 대국화를 지향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 시대 일본은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더 이상 과거에 추구하던 ‘성장’을 목표로 고집해선 안 됩니다. 군사 강국을 지향하는 발상도 지양해야 합니다. ”

▷조속한 문제 해결을 위해 한·일 정상회담을 여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있을까요.

“양국 정상회담은 당연히 성사돼야 합니다. 사실 조기에 이뤄졌어야 합니다. 어려운 문제가 발생했을 때야말로 지도자들이 직접 만나서 회담하는 게 필요합니다.”

하토야마 前총리는
日 과거사 반성에 앞장…대표적 지한파 정치인

일본 내 대표적인 지한파 정치인으로 꼽힌다. 2009~2010년 민주당 소속으로 일본 역사상 최초의 단독 정당에 의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뤄내며 93대 총리로 선출됐다.

2001년에 우익사관으로 기술된 후소샤 역사교과서를 ‘역사왜곡’이라고 비판했고, 2015년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해 가혹한 식민지배 행위를 사죄하는 등 과거사 반성에 앞장서고 있다. 작년 10월 경남 창녕을 방문, 원폭 피해자들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하기도 했다.

증조할아버지가 중의원 의장, 할아버지가 총리, 아버지가 외무상을 지낸 정치 명문가 출신으로 일본 정치사에서 1955년 이래 굳건하게 유지됐던 자민당 체제에 균열을 일으킨 인물로 평가된다. 퇴임 후에는 한·중·일 협력을 강조하는 동아시아 공동체 건설을 주창하고 있다.

△1947년 일본 도쿄 출생 △도쿄대 계수공학과 졸업 △민주당 대표 △일본 총리 △동아시아공동체연구소 이사장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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